드라마 ‘슈퍼맨 앤 로이스’는 왜 슈퍼맨을 다시 인간적으로 만들었을까

드라마 ‘슈퍼맨 앤 로이스’는 왜 슈퍼맨을 다시 인간적으로 만들었을까

먼저 분명히 할 점이 있다. ‘슈퍼맨 앤 로이스’는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 시리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영화는 짧은 시간 안에 큰 사건과 시각적 스케일, 압축된 감정을 밀어 넣어야 하지만, 드라마 시리즈는 인물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와 관계의 변화, 반복되는 갈등과 회복을 더 길게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슈퍼맨 앤 로이스’는 바로 그 형식을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지구를 구하는 초인”이라는 거대한 개념보다, 가족 안에서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동시에 기자의 남편인 클라크 켄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더 집요하게 보여 준다.

즉 이 작품의 핵심은 슈퍼맨이라는 아이콘 자체를 다시 화려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진 슈퍼히어로 신화를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끌어내리는 데 있다. 시리즈는 초반부터 클라크 켄트와 로이스 레인이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십대 쌍둥이 아들 조너선과 조던을 키우는 부모라는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 선택 덕분에 이야기는 “새로운 악당이 나타났다”보다 “이 가족이 지금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먼저 출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드라마를 기존 슈퍼맨 실사물들과 다르게 만든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이유는 슈퍼맨이라는 존재를 약화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초인으로서의 힘이 있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족 안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클라크는 비행을 하고, 총알을 막고, 재난 현장에 누구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아들의 불안과 상처, 아버지로서의 부재감, 아내가 느끼는 서운함 같은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여기서 작품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어떤 능력을 가졌든 사람은 관계 안에서 실패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으며, 그 사실은 초능력으로 덮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시리즈의 진짜 긴장감은 그래서 외계 위협보다도 가족 안의 감정 균열에서 더 자주 나온다.

이런 접근은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본질과도 surprisingly 잘 맞는다. 슈퍼맨은 원래부터 냉소적인 안티히어로나 파괴적 전사가 아니라, 선한 양육과 공동체의 윤리 속에서 자란 인물로 이해될 때 가장 설득력이 생긴다. ‘슈퍼맨 앤 로이스’는 그 점을 굉장히 분명하게 붙잡는다. 이 시리즈의 클라크는 외계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보다, 켄트 부부에게 길러진 아들이고 스몰빌의 기억을 품은 사람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즉 그는 ‘칼엘’이기 전에 이미 ‘클라크’이며, 그 인간적인 정체성이 슈퍼맨이라는 역할의 중심이 된다.

특히 이 드라마는 슈퍼맨의 부모 서사를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조너선 켄트와 마사 켄트는 단순히 과거 회상 속 배경이 아니라, 클라크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존재들로 남아 있다. 초인적인 힘이 슈퍼맨을 슈퍼맨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아이를 어떻게 길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시리즈 전체에 반복된다. 그래서 이 작품 속 슈퍼맨은 사명감 때문에 영웅이 된 전사라기보다,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사람들을 지키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 점은 최근 몇 년간 영화에서 자주 보였던 더 어둡고 더 무거운 슈퍼맨 해석과도 선명한 차이를 만든다. 영화 쪽의 어떤 버전들이 외계성, 운명, 희생, 압박감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슈퍼맨 앤 로이스’는 오히려 “슈퍼맨도 결국 한 가정의 사람이다”라는 지점에서 힘을 얻는다. 이 작품은 슈퍼맨을 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의 근거를 다시 잡아 준다. 그가 세상을 구하는 이유가 추상적인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에서 배운 가치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시리즈를 돋보이게 만드는 축은 로이스 레인이다. 많은 슈퍼맨 이야기에서 로이스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여전히 슈퍼맨 중심 이야기의 보조 축처럼 다뤄질 때가 있다. 그러나 ‘슈퍼맨 앤 로이스’는 로이스가 기자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클라크와 대등한 파트너로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꾸준히 강조한다. 그녀는 초능력이 없지만, 정보와 언어, 취재와 설득, 끈질긴 추적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진실을 드러낸다. 즉 이 드라마는 ‘힘이 없는 인간’이 무력한 존재라는 식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로이스를 통해 인간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 점 때문에 부부 관계도 꽤 성숙하게 그려진다. 둘 사이에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생겨도 억지로 비밀을 숨기거나 오해를 질질 끌며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으로 가지 않는다. 서로 서운함을 말하고, 상처를 인정하고, 그래도 기본적인 신뢰는 무너지지 않는 관계로 설계되어 있다. 슈퍼히어로물에서 흔히 보이는 과장된 비밀주의 대신, 실제 부부처럼 보이는 대화와 조율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은 이 시리즈가 얼마나 ‘드라마’다운지를 잘 보여 준다. 영화보다 긴 호흡을 가진 시리즈이기 때문에 가능한 밀도이기도 하다.

두 아들 조너선과 조던의 존재 역시 중요하다. 이들은 단순히 부모 세대를 귀찮게 만드는 부속 캐릭터가 아니라, 작품이 진짜로 무엇을 다루는지를 보여 주는 핵심 장치다. 한쪽은 비교적 외향적이고 사회적으로 적응력이 있고, 다른 한쪽은 불안과 사회적 위축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초능력의 가능성이 이런 성격 차이와 엮이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서로 다른 취약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드라마가 된다. 이건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보다 훨씬 더 생활에 가까운 문제이고, 그래서 더 아프게 와 닿는다.

작품은 작은 마을 스몰빌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이 공간을 단순히 이상화하지 않는다. 클라크가 기억하는 스몰빌은 따뜻한 고향이지만, 실제로 지금의 스몰빌은 경제적 침체와 지역 갈등, 정치적 분열이 스며든 공간이다. 이 점도 이 드라마가 영화가 아니라 시리즈일 때 더 힘을 얻는 부분이다. 영화라면 대개 큰 악당과 큰 사건에 집중하느라 지나가기 쉬운 지방 소도시의 현실, 일자리와 지역 공동체의 위기, 사람들끼리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다는 문제를 시리즈는 더 천천히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슈퍼맨 앤 로이스’는 영웅 서사이면서도 동시에 지방 공동체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이 시리즈가 특히 인상적인 것은 초능력과 일상적 상처를 같은 무게로 다룬다는 데 있다. 정신건강 문제, 부모의 부재감, 부부 갈등, 지역사회 불신 같은 것들은 레이저 시선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은 이런 문제를 “그래서 인간이 약하다”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로 다룬다. 슈퍼맨조차 이 문제들 앞에서는 서투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감 가능한 존재가 된다. 여기서 작품의 핵심 메시지가 나온다. 인간적인 문제를 가진다고 해서 특별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슈퍼맨 앤 로이스’가 특별한 이유는 슈퍼맨을 더 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영화보다 드라마 시리즈라는 형식 안에서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작동한다. 시리즈는 클라크와 로이스, 두 아들, 스몰빌 사람들의 관계를 길게 따라가며, 영웅 서사의 진짜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세계를 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 곁에 있어 주는 일,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려 애쓰는 일, 공동체 안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이 결코 그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슈퍼맨을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왜 이 인물이 오래 살아남는지를 다시 증명한 드라마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