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멸종 이야기는 늘 거대한 파괴와 끝의 이미지로 먼저 기억된다. 약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지금의 멕시코 유카탄 반도 부근에 충돌했고, 그 결과 지구는 지질학적으로도 생태학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충돌 직후의 직접 피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먼지와 재, 그을음이 대기 중에 퍼지면서 햇빛이 약해졌고, 광합성이 크게 흔들리며 먹이사슬 전체가 붕괴했다. 이 사건으로 비조류 공룡은 사라졌고, 익룡과 바다의 대형 파충류들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지구 생명의 상당수가 무너진 이 시점은 그래서 ‘멸종’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살아남은 계통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하다. 그렇게 처참한 날에도 생명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결국 그 생존 계통 중 하나에서 우리도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룡이 사라지던 그때, 인간으로 이어지는 아주 먼 조상은 정확히 어떤 동물이었을까. 이미 원숭이나 여우원숭이 비슷한 존재였을까, 아니면 아직 그 단계보다 훨씬 앞선 작고 눈에 띄지 않는 포유류였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려면 먼저 인간이 무엇을 기준으로 분류되는지, 영장류란 정확히 어떤 특징을 갖는지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인간은 영장류에 속한다.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침팬지와 고릴라, 오랑우탄, 원숭이, 안경원숭이, 여우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함께 포함된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특징은 단순히 얼굴이 비슷하다는 정도가 아니다. 앞을 향한 큰 눈, 상대적으로 큰 뇌, 눈 주위를 보호하는 뼈 구조, 물건을 잡기 좋은 손과 발, 벌어진 엄지, 그리고 발톱 대신 손톱에 가까운 구조 등이 영장류를 이루는 핵심적 특징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 특징들을 종합하면 영장류는 기본적으로 나무와 복잡한 입체 환경에서 움직이고, 시각과 잡기 능력을 중요하게 쓰는 동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문제는 이런 특징이 처음부터 한 번에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화석 기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떤 계통은 손과 발에서 영장류와 비슷한 특징을 보이지만 두개골은 아직 완전한 영장류처럼 보이지 않고, 또 어떤 계통은 일부 특성만 공유한다.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진짜 영장류와 영장류에 아주 가까운 준영장류성 계통을 나누어 보게 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우리 조상을 찾는 일은 “최초의 원숭이”를 찾는 일이 아니라, 영장류에 가까워지는 긴 계통의 사다리에서 어느 단계가 공룡 멸종 시점과 가장 가까운지를 찾는 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현재 화석 기록상 확실한 초기 진영장류, 즉 진짜 영장류에 가까운 동물들은 대체로 약 5600만 년 전 전후의 지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는 고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 즉 PETM으로 불리는 아주 따뜻한 시기와 겹친다. 당시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고, 북반구 곳곳에 숲이 넓게 퍼져 있었다. 이 시기에 보이는 초기 영장류들은 대체로 매우 작고, 나무 타기에 적합한 몸을 지닌 동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너무 ‘영장류답다’. 다시 말해 이미 어느 정도 분화가 진행된 상태라서, 공룡 멸종 직후에 막 살아남은 가장 가까운 조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늦다.
바로 여기서 준영장류적 계통, 즉 플레시아다피폼류가 중요해진다. 이 동물들은 완전한 영장류는 아니지만, 영장류와 매우 가까운 특징들을 여러 개 공유한다. 어떤 종은 나무를 타는 데 유리한 발목 구조를 보이고, 어떤 종은 벌어진 엄지발가락과 손톱 비슷한 구조를 부분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큰 뇌나 완전한 안와 구조 같은 진짜 영장류의 전형적 특징은 아직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집단은 “영장류가 되기 직전의 세계”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단계로 여겨진다. 즉 공룡 멸종 이후 수백만 년 동안 지구 위를 돌아다니던 우리 계통의 가까운 사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계통을 공룡 멸종 시점까지 거의 닿게 해 주는 이름이 바로 푸르가토리우스다. 이 작은 포유류는 몬태나의 헬 크리크 주변 지층에서 발견되었고, 시기는 소행성 충돌 이후 불과 약 10만 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몸길이는 매우 작고 무게도 극히 가벼웠을 것으로 보이며, 이빨과 발목뼈 같은 일부 구조에서 영장류 계통과 연결되는 특징이 읽힌다. 물론 푸르가토리우스 자체가 진짜 영장류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증거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 계통으로 이어지는 줄기와 매우 가까운 가장 이른 형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래서 “공룡이 죽던 날 우리의 조상은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자주 소환되는 이름이 바로 이 동물이다.
푸르가토리우스가 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역설적으로 거대하고 강한 동물들이 사라진 이유와도 연결된다. 이 동물은 아주 작았고, 먹이 선택 폭이 넓었으며, 나무 위와 땅의 틈새 환경을 오갈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초식 공룡이나 대형 포식자처럼 막대한 양의 먹이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씨앗이나 곤충, 열매, 연한 식물 조직처럼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여러 자원을 소량씩 먹으며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몸집과 특화된 먹이전략은 대멸종 앞에서 약점이 되었지만, 작은 몸집과 잡식성, 틈새 생활은 오히려 생존 확률을 높이는 장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나무 생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장류 계통의 먼 조상들은 나무를 타고 이동하거나 가지를 붙잡는 데 유리한 몸 구조를 조금씩 발달시키고 있었다. 이런 습성은 단순히 먹이를 찾기 좋다는 수준을 넘어, 포식자 회피와 은신, 좁은 공간 이용에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대멸종 이후의 혹독한 시기에 굴이나 나무 구멍, 나뭇가지 틈 같은 미세 서식처는 체온 유지와 포식 회피에서 매우 중요했을 가능성이 있다. 거대한 포식자가 사라진 세계에서도 환경 자체가 워낙 험했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몸으로 숨어들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가설은 꽃식물과 과일의 확산이 우리 계통의 진화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꽃식물은 공룡 시대 후반에 크게 퍼졌고, 이후 과일과 꽃, 씨앗을 이용하는 작은 포유류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영장류 계통이 시각 중심적이고, 가지를 붙잡는 데 능하며, 다양한 작은 먹이를 찾는 방향으로 진화한 데에는 이런 식물 환경의 변화도 작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우리는 단순히 공룡이 사라졌기 때문에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꽃과 열매가 풍부한 생태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몸을 점차 갖추었기 때문에 이후 더 크게 번성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의 아주 먼 조상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특정한 한 종의 이름보다, 그 계통이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았느냐이다. 작고, 빠르고, 나무를 탈 수 있고, 잡식성이며, 조금씩 환경을 바꾸어 가는 식물 세계와도 맞물려 있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공룡 멸종 직후의 세계는 힘센 동물에게 유리한 세상이 아니라, 적게 먹고도 버티며 숨어 지낼 수 있는 작은 일반주의자에게 더 유리한 세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바로 그런 조건에서 영장류 계통의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공룡이 멸종하던 날 우리의 조상은 사람은커녕 원숭이처럼 보이는 동물도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증거를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후보는 푸르가토리우스 같은 아주 작은 줄기 영장류성 포유류이며, 진짜 영장류는 그보다 수백만 년 뒤 더 분명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은 동물은 이미 나무 생활에 적합한 방향으로 몸을 쓰고 있었고, 다양한 먹이를 조금씩 먹으며 버티는 전략을 갖추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공룡들이 쓰러진 자리에서 살아남은 것은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작은 몸, 털로 덮인 체온 조절 능력, 잡식성, 나무와 꽃식물이 제공한 틈새였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도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대멸종을 버틴 작은 숲속 동물의 생존 방식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